중국 선물시장 개장
그동안의 원자재 시장은 미국이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했습니다. 원유, 천연가스, 옥수수, 금, 은, 구리 등 많은 원자재 선물시장을 미국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원자재는 누가 뭐라고 해도 바로 석유입니다. 2018년 3월까지, 세계에서 석유를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통해 결제를 해야만 했습니다. 이를 '페트로 달러(Petro Dollar)'라고 합니다. 페트로 달러는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그 힘을 유지하는데 큰 공헌을 한 시스템입니다. 전 세계에서 석유가 필요하지 않은 국가는 없는데, 이 석유를 구매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달러를 손에 쥐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018년 3월, 상하이 선물거래소가 출시됩니다. 이 곳에서도 석유를 판매하는데, 결제 통화는 '위안화'입니다. 그리고 전세계 사람들이 이 거래소를 통해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즉 페트로 위안이 새롭게 출범하면서, 달러 기축통화 시스템에 조금씩 균열을 내고 있습니다. 첨언하자면, 현재 주요하게 거래되는 WTI, BRENT유는 '경질저유황유'이고, 중국에서 거래되는 석유는 '중질고유황유'라고 합니다. 두 상품의 속성까지 알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중질고유황유는 현재 동북아 지역에서 주요하게 사용되는 유종이라고 합니다. 즉, 서방세계의 석유 원유시장과 직접적인 경쟁은 피하면서, 현재 중국 주변의 아시아권에서 그 영향력을 먼저 키우겠다는 의도로 읽힙니다. 중국과 함께 대미 전선을 구성하고 있는 이란, 러시아, 베네수엘라 등의 석유회사들은 이미 석유를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의 원유 수입은 이미 2015년 미국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리고 중국에 가장 많은 원유를 수출하는 국가는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 입니다. 미국은 셰일혁명을 통해 이미 자체 산유국으로 올라선 터라, 원유 수입량 증가세가 점차 둔화되고 있습니다. 즉, 국제 원유시장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점차 커진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페트로 달러의 중심 역할을 한 산유국은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아직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위안화로 석유를 결제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인 중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향후 석유 거래 시장에서 위원화 결제 비중이 점차 확대된다면,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만드는데 한 축을 담당했던 '페트로달러'의 위상이 흔들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대일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일대일로는 아시아 대륙과 연결된 유럽,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지를 중국과 육상/해상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전 세계의 주요 항구 및 요충지마다 도로, 항만을 건설하여 '21세기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큰 비전입니다. 이는 중국의 석유 수입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현재 말라카 해협은 전 세계 물동량의 20%를 차지하는 지역입니다. 또한 전 세계 석유 운송선의 80%가 이 지역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길이는 900km에 이르는데 폭은 1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 협소한 구역입니다. 해협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한 해적들도 골칫거리인 지역입니다. 중국은 현재 말라카에 집중되어있는 자원 수송로를 다변화하고, 지역별로 허브 구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역별 주요 도시에 중국은 항만, 도로, 철도, 가스관, 송유관 등을 공격적으로 건설하고 있습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로, 2차 대전 당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일본이 미국의 진주만을 공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석유'때문이었습니다. 1941년 당시 일본의 석유 비축량은 길어봐야 2년을 버틸 수 있는 규모 정도밖에 남지 않았는데, 당시 일본으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출하던 미국이 석유 수출을 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우려하는 부분도 바로 이런 지점입니다. 미군기지는 전 세계 135개 국가에 주둔 중입니다. 그중 많은 부분이 중국을 둘러싼 아시아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아직은 중국이 미국의 국방력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말라카 해협이 군사적으로 봉쇄된다면, 상상하기 싫은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최근 중국이 남중국해(난사군도 일대)에 인공섬을 만들고 군사기지를 세우면서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 또한 이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일대일로는 바로 이러한 부분에 대비하기 위해 자원 수송로를 다변화하는 전략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형 인프라 건설에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주도로 만든 것이 바로 '아시아 인프라 개발은행(AIIB)'입니다. 우리나라가 과거 이 은행에 회원국으로 참가하는 과정에서 극심한 미국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이 은행은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을 금전적으로 뒷받침하는 동시에 IMF, WB(세계은행)로 이루어진 미국 중심의 금융 질서에 균열을 만들고 아시아 지역의 금융패권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중국은 이 AIIB의 초기 자본금 1,000억 달러 중 4~50%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담당하겠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중국제조 2025
자원 수급의 다변화와 더불어 중국의 경쟁력을 위한 계획이 '중국제조 2025'계획입니다. 그간 중국은 낮은 임금과 풍부한 노동력으로 세계의 모든 제조업 회사를 끌어모아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지만, 마땅한 기술이나 제조업 경쟁력이랄 게 부족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2015년 리커창 총리의 볼펜심 개탄 사건으로 본격화됩니다. 2015년 리커창 총리는 좌담회에서 '중국은 우주선도 발사하는데 볼펜심조차 못 만든다'며 개탄한 것입니다. 당시 중국에서는 매년 400억 개의 볼펜을 수출하며 전 세계 80%의 공급을 책임졌지만, 볼펜의 핵심인 '볼펜심'은 일본과 독일에서의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입니다.
즉, 제조업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계획으로, 30년에 걸친 장기적인 계획입니다. 차세대 정보, 항공우주 설비, 고급 공작기계 및 로봇, 해양 엔지니어 설비 및 첨단 선박, 선진 궤도교통 설비, 에너지 절감 및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설비, 농업기계설비, 신소재, 바이오 및 의료기기 등 10개의 핵심산업을 정하고, 이 분야에서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실제로 중국의 연구개발 투자(R&D) 규모는 세계 2위, 과학 관련 논문 게재수는 세계 1위를 달성하는 등 빠른 속도로 기술을 발전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인해 직접적인 '중국제조 2025'계획에 대한 언급은 빠져있습니다만, 계획의 추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중국의 제조업 발전 계획은 총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는데, 1단계는 2025년까지의 계획으로, 제조강국 멤버에 진입하겠다는 목표입니다. 현재 제조업 2그룹인 독일, 일본과 같은 수준으로 올라서겠다는 계획입니다.
2단계는 제조강국 중에서도 중간 이상의 지위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2025년부터 2035년까지의 계획입니다. 즉, 독일과 일본을 추월하여 2그룹 중 선두에 서겠다는 의미입니다.
3단계는 2그룹이 아닌 1그룹으로 진입하여 세계 제조업 선도국가로 발돋움하는 것입니다. 물론 1그룹 국가는 미국으로, 2035년부터 2045년까지의 계획입니다.
중국은 이렇게 향후 30년을 바라보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이뤄나가고 있습니다. 참 무서운 국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서 격화된 미중 무역갈등과 미국의 관세 조치는 중국제조2025 핵심 산업 분야와 맞닿아있습니다.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분야의 제품들에 미국이 관세를 일괄적으로 부과한 것입니다. 중국의 제조업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전에 미리 싹을 잘라놓겠다는 의도로 풀이됩니다. 미국의 관세를 부과한 품목은 의료기기, 바이오 신약, 산업용 로봇, 화학제품, 항공우주제품, 해양 엔지니어링, 전기차, 반도체 등입니다.
미중 무역갈등이 아닌 세계 패권 갈등
미국은 누가 뭐라 해도 현재까지 지구 상 최강대국입니다. 하지만 그냥 최강대국이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소련, 일본, 독일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꺾고 지금의 위치를 지켜왔습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상대국의 경제 규모가 미국 GDP의 40%를 넘어서면 구체적인 행동에 나섭니다. 소련과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무한 군비경쟁으로 승리를 쟁취했습니다. 일본은 한때 글로벌 시가총액 1~10위 기업의 대다수를 보유하며 미국 경제규모의 45%까지 따라잡았습니다. 그리고 미국은 1985년 플라자 합의를 통해 엔화를 10년 동안 70%가량 대폭 절상시키면서 잃어버린 20년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일본은 95년 미국 경제규모 대비 70%에 이르는 엄청난 경제강국이었지만, 현재는 20% 수준이 되어버렸습니다.
중국의 GDP는 2010년 미국 경제규모 대비 40%까지 성장하며 미국의 최대 위협국으로 떠올랐지만, 당시 미국은 2008년 경제위기로 인해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70%까지 따라잡았습니다. 지금과 같은 성장세라면, 2030년 이후에는 중국의 GDP가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무역과 제조업 분야 경쟁력은 미국을 따라잡거나 추월했지만, 군사적 측면과 금융 경쟁력에서는 아직은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미국은 아직도 대일 무역 적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을 제압한 분야는 제조업이나 무역이 아니라 '환율' 즉, 금융 부분이었습니다.
중국이 특히 취약한 금융분야에서 약세를 뒤집기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선물거래소 개장, 디지털 위안화 개발, 홍콩을 대체할 하이난 자유무역항 개발 등 다양한 계획들을 구상 중이지만, 아직 제조업 만큼 구체적인 성과나 결과물이 있다고 보기엔 어렵습니다.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로 보입니다. 앞으로 이 창과 방패의 대결의 승자가 어떻게 될지는 단숨에 판가름 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공감과 공유는 창작자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시사경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 원유재고, 소비자물가지수 - 중요한 경제지표를 알아보자 (0) | 2020.07.04 |
---|---|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 비농업 고용지수 - 중요한 경제지표를 알아보자 (0) | 2020.07.03 |
인국공 정규직 전환과 우리나라 고용시장 (0) | 2020.06.25 |
유가 폭락 사태와 저유가의 장기화가 미치는 영향 (0) | 2020.06.23 |
삼성중공우 주가 폭등과 우선주 (0) | 2020.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