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약달러 현상
7월을 마무리하고 8월을 시작하는 시점, 기축통화로 쓰이는 달러에 대한 흥미로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7월 들어 달러화가 4%대 하락을 겪었는데, 지난 10년간 가장 큰 하락폭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는 지속적인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미국 경제에 대한 불안감,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발언, 엄청난 양적 완화로 인해 무한정으로 찍어내 공급되고 있는 달러 등 복합적인 요인이 조합되어 나타난 결과입니다. 이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안전자산인 금값은 연일 최고 가격을 경신하고 있고, 또 다른 안전통화 중 하나인 유로화 역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적으로 달러화의 가치를 파악할 수 있는 ‘달러 인덱스’는 22년 만에 최저치인 93포인트까지 하락했습니다.
이런 저금리 + 약달러 기조에 힘입어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매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한국거래소의 발표에 따르면 7월 외국인의 순매수 규모는 8,900억원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지속적인 팔자 행진에서 돌아선 것입니다. 코로나 공포가 극에 달했던 지난 3월, 외국인은 1212조 원의 주식을 팔아치우면서 국내 증시 하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달러화 가치의 하락(약달러)은 경제가 호황기일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경제위기가 발생할 위험이 적은 시기이기 때문에, 달러보다 하이리스크-하이리턴 자산에 투자심리가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흥국 자산, 주식 등에 보다 많은 자금이 몰리게 됩니다. 상대적인 안전자산인 달러화는 로우리스크-로우리턴 자산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달러화 가치 하락은 맥락이 정 반대인 상황입니다. 코로나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미국의 정치, 경제적인 혼란이 가중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연기 발언, 추가 부양책 합의안 도출이 지연되고 있는 상황, 30%대의 역성장을 기록한 2분기 GDP실적, 엄청나게 공급되고 있는 달러화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것입니다. 특히 무제한 양적완화 조치 중 하나인 미국 연준의 채권 매입 정책은 이러한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연준이 나서서 채권 가격을 통제해야 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는 방증이기 때문입니다.
각종 우려는 신용평가기관에서도 마찬가지로 제기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신용평가사인 ‘피치’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AAA(최고등급)로 유지했지만, 향후 전망을 ‘부정적’으로 전환했습니다. 미국은 이미 신용등급 강등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2011년 8월, 주요 신용평가사중 하나인 S&P에서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한 단계 강등된 AA+로 발표했습니다. 당시 미국의 GDP대비 국가부채는 91%대였습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있고 난 후, S&P500 지수는 6%대의 급락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미국의 정부부채는 GDP대비 13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를 보여주는 전반적인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당장 30%의 역성장을 기록하고, 파산신청을 한 기업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준 역시 양적완화 정책과 유동성 공급 기조를 멈출 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당장 부채를 줄이고 유동성을 거둬들이기 위해 금리를 인상하게 되면 각종 자산시장에서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부채를 갚기에도 버거운 기업들에게 큰 타격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중국
현재까지 전세계에서 원유를 매매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통해서만 결제가 가능했습니다. 이러한 ‘페트로달러’는 달러의 기축통화 자리를 공고히 하는데 일등공신의 역할을 했습니다. 석유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고, 석유를 사기 위해서는 달러를 먼저 구매해야 하니 달러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페트로달러 체제에 균열을 가하는 사건이 조금씩 발생하고 있습니다.
중국이 ‘페트로달러’를 대체하기위해 2018년 상하이선물거래소를 개장하고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하는 시스템을 내놓았습니다. 초기에는 중국 당국의 시장 개입 등 정치적 경제적 불안정성을 우려해 유의미한 거래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올 7월, 영국의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이 300만 배럴의 원유를 최초로 위안화 결제를 통해 거래를 완료했습니다. 5대 에너지 업체중 하나인 ‘머큐리아’역시 원유 300만 배럴을 위안화를 통해 거래할 예정입니다. 아직은 미미한 수준이지만, 어쨌든 원유를 위안화로 결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원유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산업군은 바로 ‘운송’섹터입니다. 이번 코로나로 인한 원유 가격이 폭락한 것 역시 경제봉쇄로 인해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 운송이 막히게 되면서 야기된 급격한 수요 폭락이 주된 원인이었습니다. 아직 코로나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고 있는 미국은 석유 소비량이 아직 회복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경제활동을 시작한 중국은 지난 6월 하루 평균 원유 수입량이 1290만배럴을 기록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중국 관세청은 밝혔습니다. 이러한 상황은 중국이 최대 원유 수입국으로 부상하고 원유 시장에서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지게 될 것입니다.
물론, 국제적으로 위안화의 위상은 아직 기축통화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미미한 수준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의 보유 화폐 중 위안화 비중이 2%대에 그치고 있고, 달러는 60%이상의 큰 격차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달러 외에도 유로화가 20%, 엔화와 파운드화가 5%대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IMF는 밝혔습니다.
중국의 야심 – 디지털 위안화
중국은 간편 결제가 보편화된 국가입니다.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을 통해 매매를 하는 것이 이미 사회에서 익숙한 결제 방식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위안화’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는 민간에서 발행되고 있는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과 같은 암호화폐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바로 정부에서 그 가치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중국은 2014년부터 국가주도로 주요 은행과 통신사 등과 함께 디지털 위안화 기술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시점에서 어느 정도 기술 개발을 마무리하고, 시범운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쑤저우, 청두, 선전, 슝안 등 4개 지역에서 이미 시범적으로 운용 중입니다. 이는 현재 기축통화의 역할을 하고 있는 달러의 지위를 더욱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도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리브라’라는 바스켓 통화를 출시하려 시도했으나, 민간 기업이 화폐를 발행하고 감독한다는 각종 우려로 인해 동력을 상실한 상황입니다. 현재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고 있는 국가는 약 50여 개로 추산됩니다.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를 유지하게 하는 원동력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달러를 결제하려면 무조건 한 단계는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거쳐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금융시스템이 적대적인 국가를 자신의 시스템에서 배제해 버리면, 당장 그 국가는 달러화를 통한 거래가 막히게 됩니다. 그 국가가 산유국이 아닌 경우, 원유를 구하는 것 조차 굉장히 힘들어질 것입니다. 이렇듯 기축통화 시스템을 가짐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이 굉장히 많습니다.
현재 국가간 송금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단일한 통로인 국제금융통신망(SWIFT)를 통해 상호 확인 및 환전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거의 모든 자금의 흐름이 확인될 수 있지만, 많은 상호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2~3일의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부과되는 수수료 역시 적지 않고, 은행 계좌를 가지지 못한 3세계 국민들의 경우 이 서비스를 이용조차 할 수 없습니다. 즉, 달러가 기축통화라는 점은 미국에게 큰 이점을 가져다 주지만, 그 외 국가들에게는 현행 시스템에서 주는 불편한 점이 많기도 합니다.
2015년 기준 은행계좌를 보유하지 못한 인구수는 20억명으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 20억명이 디지털 위안을 통해 거래를 시작하고, 달러를 대신해 디지털 공간에서 자유롭게 송금이 가능하고 결제까지 가능한 화폐가 등장한다면, 미국의 기축통화 지위는 크게 흔들릴 것입니다. 미국이 기축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 역시 많은 부분 희석될 것입니다.
이 대결의 결말은?
물론 이 과정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입니다. 우선은 위안화에 대한 국가적인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당장 각국 중앙은행에서 위안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미국의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때 까지 소요된 시간은 영국보다 미국의 경제규모가 커지고 난 후 70여년이 흘렀을 시점이었습니다. 위안화의 기축통화화 역시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흐름을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이것을 견제하기 위해 위안화의 국제 진출 통로인 홍콩을 봉쇄하는 등 여러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시진핑 주석이라는 호칭을 총서기라고 표현하고, 중국 공산당을 동맹의 힘으로 바꿔야 한다는 발언이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브리핑에서 나왔습니다. 미국과 중국간 본격적인 대결을 앞두고 있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중국 역시 중국몽 실현을 위해 페트로위안과 디지털 위안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애매한 위치에 있는 우리나라 역시 앞으로 벌어질 국제정세의 혼돈 속에서 합리적인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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